한국 피폭자 '7만 명'인데‥30년 걸린 위령비 건립

  • 2년 전
◀ 앵커 ▶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했죠,

일본인들 뿐아니라, 무려 7만여명의 한국인들이 원폭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부분 일제에 강제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사람들이었는데요.

나가사키에 이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건립추진 30년 만에,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위령비입니다.

고현승 특파원이 나가사키 현지에서 전해왔습니다.

◀ 리포트 ▶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멈춰선 시계.

24만여 명이 살던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15만 명이 숨지거나 다쳤습니다.

한국인 약 2만 명도 포함돼있습니다.

상당수는 강제로 끌려와 조선소 같은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사람들입니다.

[권순금/한국인 피폭자(95세)]
"'펑'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하늘이 컴컴했습니다. 처음엔 몰랐죠. 나중에 알아보니까 원폭이었습니다."

하지만 치료와 지원은 일본인 우선, 혹독한 차별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마츠무라 아사오/한국인 피폭자 2세]
"(피폭자인 아버지는) 몸이 망가지고 일을 못하게 돼서 아이들을 시설에 맡겼습니다. (우리 형제는) 고아원 보호시설에서 자랐습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 광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양심적인 일본인들입니다.

일본에 남은 피폭자를 돕고, 한국으로 돌아간 피폭자들까지 찾아나섰습니다.

[히라노 노부토/평화활동지원센터 소장]
"(35년간) 한국에 5백번 갔었습니다. 적어도 1천 명의 피폭자를 찾아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또 성금을 모아 추모비도 세웠습니다.

[신카이 토모히로/오카마사하루기념 평화자료관]
"(조선인들이) 왜 나가사키에서 피폭을 당했는가, 그 책임은 일본에 있습니다. 추모비를 만든 첫 번째 이유는 사죄입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인의 손으로, 한국인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나가사키에 세워졌습니다.

건립을 추진한 지 30년 만입니다.

[강성춘/재일민단 나가사키 단장]
"(나가사키시측과) 끈질기게 협의를 거듭한 결과, 우리 한국인 동포의 손으로 염원하던 위령비를 건립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 이유로 장소 제공을 반려했던 나가사키시는 비문에 쓰려고 한 '강제동원과 강제노동' 표현도 문제삼았습니다.

오랜 진통끝에 결국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한글과 '강제로 노역했다'는 영문 표현을 넣었습니다.

해방을 맞은지 76년,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야 비로소 이렇게 위령비를 세워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오롯이 역사에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됐습니다.

나가사키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영상취재 : 이장식, 김진호(도쿄) / 편집 : 김진우영상취재 : 이장식, 김진호(도쿄) / 편집 :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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