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이 간다]과거를 지키는 장인들…‘80년 단골’ 이발소
  • 4년 전


이렇게 놀라운 기술로 우리 미래를 꿈꾸게 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우리의 푸근한 과거를 지켜주는 이들도 있습니다.

수십 년 간 그 자리 그대로 있어온 장인들을 만나봤습니다.

김진이 간다, 시작합니다.

[리포트]
[김진]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참 재빠른 세상입니다.
당연한 듯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주변에서 자취를 감춰버리곤 하는데요, 그런데, 이런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수십 년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변의 숨은 장인들을 만나보겠습니다.

서울 혜화동. 낡은 외관의 이발소는 동네의 터줏대감이 되었습니다.
80여 년 간 한 자리를 지켜온 이발소.
곳곳에 세월의 손때가 묻었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전 주인에게 가게를 넘겨받은 지덕용 씨는 이발경력이 65년이나 되지만 지금도 매일 아침 거울을 닦습니다.

[지덕용 (83) / 경력 65년]
이발소는 거울이 생명이기 때문에 거울이 나쁘면 손님 얼굴이 일그러지기 때문에 (매일 닦아요.)

문을 열자마자 단골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지덕용 (83) / 경력 65년]
어서와요. 들어와

반갑게 들어선 손님은 친구인지 손님인지 분간이 안 갑니다.

[지덕용 (83) / 경력 65년]
혜화동 본토박이세요.

[단골손님]
우리 사장님하고 혜화초등학교 동창이에요.

[피디]
그럼 얼마나 되셨어요. 여기 오신지?

[단골손님]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자랐으니까 80년이네. 우리 아버지부터 와서

팔순이 넘었지만 가위질은 지금도 섬세하고 정확합니다.

[지덕용 (83) / 경력 65년]
하얗게 칠해놓으면 길고 짧은 게 다 나타나. 그러니까 정확하게 깎기 위해서 그래서 이거를 사용하는 거야.

[단골 손님]
건강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시고

[지덕용 (83) / 경력 65년]
아프지 마, 아프지 마.

[단골 손님]
감사합니다.

한때는 이발사 9명이 함께 일할 정도로 손님이 몰려들기도 했습니다.

[지덕용 (83) / 경력 65년]
옛날에 이게 60년대, 70년대에는 기계를 이런 거를 썼단 말이야.

이발사와 함께 나이를 먹은 이발 도구들. 이가 다 빠져버린 가위지만, 평생 간직할 보물입니다.

숙련된 전문가에게 받는 면도는 이발소의 백미!

[지덕용 (83) / 경력 65년]
이야.. 수염이 목까지 났구나.

[김진]
네. 제가 털이 많아요. 선생님.

면도크림을 바른 얼굴에 뜨끈한 수건을 올린 뒤,

예리한 면도칼로 조심조심게 수염을 깎습니다.

[김진]
따뜻하게 면도크림 발라주고 하니까 굉장히 좀 부들부들해서 이거 뭐 피부가 매끈해요.

우연한 기회에 찾았다가 단골이 됐다는 젊은 손님도 있습니다.

[최석재 (28) / 단골손님]
(미용실은) 빨리 자르고 보내는 그런 게 많은데 여기는 천천히 가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만약에 없어진다면 굉장히 아쉬울 것 같아요.

[지덕용 (83) / 경력 65년]
혜화동, 명륜동에 이발소가 14군데 있었어. 14군데
다 없어지고 나 하나 남았어. 평생 이걸로 먹고 살았으니 이 직업을 고맙다고 생각하고 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요란한 쇠망치 소리가 서울 도심 주택가에 울려 퍼집니다.

좁은 공간에서 전통 대장간의 맥을 이어나가는 66년 차 대장장이 박경원 씨와 아들 박상범 씨.

[박상범 (52) / 2대 대장장이]
균형이 안 맞고 때리는 게 잘 안 맞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항상 작업할 때 집중해서 해야 해요.

벌겋게 달군 쇳덩이를 쇠망치로 연신 두드립니다. 오직 사람의 힘과 기술, 눈썰미로 만드는 전통방식. 경력 66년 장인의 검수를 거치고 나면 도끼 하나가 완성됩니다.

[박경원 (82) / 1대 대장장이]
내가 65년, 66년 됐는데 나하고 배운 친구들 몇 명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다 죽고 (대장장이) 안 해.

열일곱에 상경해 대장간 일을 배운 박경원 씨는 이 자리에서만 45년 넘도록 망치를 잡았습니다.

[박상범 (52) / 2대 대장장이]
옛날에는 이게(연탑집게) 엄청나게, 우리가 전국으로 많이 팔았어요. 옛날에는, 연탄 많이 쓸 때. 지금은 연탄을 별로 많이 안 쓰고 조금밖에 안 쓰잖아요.

요즘은 등산용 지팡이나 캠핑용 장비가 효자상품이 됐습니다.

부자의 야무진 솜씨에 단골손님도 많습니다.

[박상범 (52) / 2대 대장장이]
이가 다 나갔어요. 이거

[단골손님]


[박상범 (52) / 2대 대장장이]
여기를 다 잘라서 만들어야겠는데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도 있지만 대장간을 찾는 이유가 있다는데요.

[단골손님]
모양도 좋고, 친절하고, 칼도 잘 갈아주시고, 잘 만들어주시고. 아마 죽을 때까지 쓸 거야. 이거

시간이 지나며 손님도 점점 줄어들었지만 대장간 일은 박경원 씨의 삶이자 보람입니다.

[박경원 (82) / 1대 대장장이]
90세까지는 해야 되는데 아프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맨날 부처님한테 난 빌어

세월이 멈춘 듯 그 자리에 남아있는 오래된 가게에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삶의 흔적도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김진이 간다, 김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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