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 김기천, 이제야 벗는 무명 설움..."오래가고 싶어요"

  • 5년 전
'직장의 신'은 평범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극중 만년과장 고정도는 "막내가 졸업할 때까지만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평범한 중년 직장인들의 대변자다.

승진에서 밀리고 사무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공기같은 존재지만, 한때 열정과 포부를 갖고 회사를 위해 달려온 고정도의 사연은 10회 '고과장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에피소드를 통해 설명됐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통해 배우 김기천의 존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데뷔 20년 만에 배우로서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김기천을 만났다.

"데뷔 20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제가 극을 이끌어가는 10회 대본을 받는 순간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흥분됐어요. 눈물이 나올 정도였거든요. 이야기 자체가 슬프기도 하고, 남 이야기가 아니라 제 얘기 같았어요. 고 과장에 대한 부담감도 몰려왔죠. 제가 표현하지 못해 '직장의 신'에 누가 될까봐 부담감도 컸어요.

제가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라고 해서 따로 준비한건 없어요. 고 과장은 저는 공통점이 많은 인물이라 그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아픔과 외로움이 있지 않겠어요.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감추고 아파하면서 살아가는데요. 고 과장처럼 저도 집에서 나름대로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 하는데 잘 안되고, 제가 하는 일에서도 조연이나 단역을 맡다보니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지낼 때가 많았거든요. 고 과장에게 그래서 더 공감이 갔어요.

"우리세대의 로망 김혜수, 앞자리에 앉으니 떨려"

1989년, 서른 넘어 극단 아리랑에 입단했어요. 이후 1993년 영화 '서편제'에서 단역을 맡으면서 영화에 계속해서 출연하게 됐죠. 약 8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는데, 지난해 단막극 이후 TV 드라마에 출연한 건 처음이에요. 드라마로서는 데뷔작인 셈인데 좋은 역할을 맡아 감사하죠.

무엇보다 저희 세대 로망이었던 김혜수 씨와 만나는 게 좋았어요.(웃음) 세트에서 자리 배치도 바로 앞이더라고요. 부끄럽고, 선배니까 좋은 척도 많이 못했어요.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장난처럼 취미 생활이라고 배우들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김혜수 씨와는 찍지도 못했어요. 선망의 대상이니 "사진 찍자"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다행히 한 선배님이 먼저 찍자고 말씀해 주셔서 찍긴 했어요. 부인에겐 미안하지만, 그 날을 잊지 못할 것 같네요.(웃음)

"2013년은 인생 최고의 순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연기를 했지만, 2013년은 최고의 해였던 것 같아요. 연 초부터 제가 출연했던 영화 '7번방의 선물'이 1000만 관객을 넘었고요. '직장의 신'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두 작품 모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7번방의 선물'은 고사를 지낼 때부터 손해만 보지 않았으면 했고, '직장의 신'에서도 주변인물로서 극이 흘러가는데 도움만 주자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주인공도 되고, 원래 작품이 끝나면 빨리 잊는 편인데, '직장의 신'은 워낙 각별한 작품이라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아요.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보고요. 특히 김혜수 씨는 포털 실시간 검색어가 올라가는 걸 계속 찍어서 보내더라고요. 저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좋아해줘서 기분이 묘했어요.

인터뷰도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사람들이 알아봐주세요. 이런 변화가 얼떨떨하긴 하지만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있던 사람이다 보니 오만해 보인다거나 하는 게 싫어요. 지금 순간은 좋지만 이게 오래가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항상 하면서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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