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아프간 협력자' 한국에 오다

  • 3년 전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아프간 협력자' 한국에 오다

[오프닝: 이준흠 기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시작합니다! 이번 주 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준흠 기자]

지난달 26일부터 이틀에 걸쳐 아프간 협력자와 가족 390명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특별공로자'였다가 '특별기여자'로 바뀌는 등 유례없던 일이라 법 개정까지 필요했는데요. 이들이 어떤 자격으로 한국 땅에 머무르게 되는 건지 먼저 홍정원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한국 온 미라클 아프간인들…특별기여자? 난민? / 홍정원 기자]

활주로는 아비규환입니다. 여기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공항입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아프간 난민들에게 탈출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한국행 비행기 옆으로도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아프간 조력자들을 국내로 들여오는, '미라클 작전'입니다. 이들에게 붙여진 첫 이름은 특별공로자입니다.

"참고로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로서 국내에 들어오는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대한민국 인천. 긴장감은 마침내 안도감으로 바뀝니다. 그 사이 이름은 한 번 더 바뀌었습니다.

"특별공로자라는 명칭보다는 특별기여자로 법무부가 오늘 정했습니다."

현행법에 없는 새로운 이름을 꺼내 든 겁니다.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에 특별한 기여가 있거나 공익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체류자격(F-2)을 줄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고 있고…"

비자가 발급되면 5년간 한국에 머물 수 있습니다. 직장도 가질 수 있고, 당연히 돈도 벌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난민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를 도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난민보다는 더 좋은 지위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은 이래도, 결국 인천 부평에 터 잡은 100여 명의 미얀마 난민들과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사실상 이름만 다를 뿐 난민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난민 대신 특별공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용어를 써서 국내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꾸고…"

실제 난민에 대한 국내 여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2018년 예멘 난민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찬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난민협약 이행하라, 난민협약 이행하라, 난민협약 이행하라!"

반대 측에 균형추가 쏠린 게 사실입니다.

"(추방하라!) 추방하라, 추방하라, 추방하라!"

논란 끝에 정부는 500명 가까운 예멘 난민 중 단 2명에 대해서만 난민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비율로는 고작 0.4%.

난민이 아니다, 한국에 기여한 조력자라는 거듭된 정부의 설명은 결국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해석입니다.

"마치 난민으로 인정을 받고 난민으로 체류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에 뭔가를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일단 여론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하나 남았습니다.

"난민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은 조금 어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면 가족 결합 원칙 같은 건 어려울 것 같고요."

난민이지만 난민은 아닌 특별기여자들이 아프간에 남겨둔 가족들을 데려오겠다며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경우, 또 한 번 이들을 놓고 난민이냐 아니냐의 뜨거운 논쟁이 예상됩니다.

연합뉴스TV 홍정원입니다.

[코너:이준흠 기자]

2001년 '아프간 전쟁'에 우리나라도 비전투부대를 파병하면서 아프간은 한국 외교사에 본격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정부 경고를 무시하고 23명이 선교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붙잡혔는데요.

수백억 몸값을 치른 뒤에야 이들은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허가 없이 여행금지국가에 가면 징역까지 살 수 있게 법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 아프간의 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었습니다.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족의 수장이나 실력자가 지배하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인데요. 이슬람 성직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학생 50명을 데리고 조직한 민병대가 시초입니다.

아프간 최대 민족, 파슈툰족의 민족주의를 앞세워 2001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지만, 엄격한 이슬람 율법 정치로 비난받았는데요.

결국 9·11테러의 배후자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신병 인도 요구를 거부하다 아프간 전쟁으로 붕괴했습니다.

친서방 민주정부를 세우고, 군경을 훈련시켜 탈레반 잔당을 소탕할 때만 해도 미국은 이 전쟁이 20년 동안 이어질 줄은 몰랐을 겁니다.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영원한 전쟁'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끈질기게 버티며 세력을 키워온 탈레반, 끝내 8월 15일 대통령궁을 장악하며 승리를 선언했고, 미국은 8월 30일 밤 11시 59분, 철수 시한 1분을 남기고 마지막 수송기를 띄웠습니다.

현재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정권에서 살 수 없다며 탈출 행렬이 잇따르고 있는데, 특히 여성들의 불안이 큽니다.

탈레반이 샤리아법이라는 이슬람 율법을 따를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카불 시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복장이 세계 어느 도시인과 별반 다르지 않죠? 하지만 샤리아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온몸을 뒤덮는 부르카를 입어야 하고, 학교를 갈 수 없고, 남성 가족 없이는 밖에 다니지도 못합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군이 떠나며 생긴 힘의 공백 속, 내전은 물론 무장세력 간 세력 다툼까지 불붙고 있습니다.

탈레반과 반탈레반 저항 세력의 전투가 시작됐고요,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도 다시 모여들고 있습니다.

카불 공항 등 현지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 IS-K의 소행으로 알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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