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백발의 투사
  • 3년 전
◀ 앵커 ▶

민주화와 노동운동, 통일 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백기완 선생이 오늘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 시를 쓴 고인은 약자를 위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왔습니다.

백기완 선생이 남긴 발자취를 이재민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 리포트 ▶

"맨 첫 발, 딱 한 발 띠기에 목숨을 걸어라."

풀어헤친 흰 머리와 검은 두루마기.

민중과 민족, 민주주의에 투신한 운동가는 언제나 뜨겁게 끓었습니다.

1933년 일제 강점기 황해도 산자락에서 태어나 돼지 기름 한 덩어리도 못 먹던 소년.

하지만 그는 다함께 배부른 사회를 꿈꿨습니다.

[故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1987년)]
"민족 앞에 몸을 던진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처럼, 온 몸을 던져야 된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야학에서 노동자와 빈민에게 글을 가르치다 4·19 항쟁에 뛰어들었고, 1974년 의형제였던 장준하 선생과 유신 철폐를 외치며 투쟁의 선봉에 섰다 투옥됩니다.

[故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1990년)]
"장준하 선생이 수사를 안 받고 버티는 겁니다. '백기완이한테는 손 대지 말아라'. 그분이 돌아가서 6개월 동안 저는 울었습니다."

손톱까지 뽑히는 모진 고문.

거구가 바짝 야윌 정도로 옥고를 치르며 장편 시 '묏비나리'를 썼습니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패배 앞에서 비장한 의지를 드러낸 그의 시는, 광주민주화운동 이듬해인 1981년,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울려퍼졌습니다.

## 광고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투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노년이 되어서도 이름없는 약자를 위한 집회의 맨 앞줄을 변함없이 지켰습니다.

[故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2019년)]
"김용균이라고 하는 어린 애가 공장에서 일하다 죽었고, 또 뭐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그런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달려가잖아. 같이 울어주는 것이지. 무슨 힘이 있어."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꿈꿨던 것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

[故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 (2019년)]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해서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것. 이게 사람의 삶이야."

현대사처럼 살아온 꼴이 평탄하지 못해 스스로를 '땅불쑥한 싸움꾼'이라고 불렀던 청년.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늘 투쟁의 앞자리에 섰던 그의 89년 삶은 오는 19일 영결식에 이은 추모제로 되새겨집니다.

MBC뉴스 이재민입니다.

(영상취재: 김동세, 나경운 / 영상편집: 신재란 / 화면제공: 통일문제연구소, 문진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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