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막전막후] 이낙연-황교안 맞대결 가능성…정치 1번지 종로 주목

  • 4년 전
[여의도 막전막후] 이낙연-황교안 맞대결 가능성…정치 1번지 종로 주목


[앵커]

여의도 정치권의 모습을 전해드리는 여의도 막전막후 시간입니다.

국회를 출입하고 있는 정치부 정영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뉴스를 준비했나요?

[기자]

네, 정치 1번지 하면 어디가 생각나십니까?

바로 서울 종로일 텐데요.

전통의 정치 1번지인 종로가 올해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1, 2위를 달리고 있는 민주당 소속의 이낙연 국무총리, 그리고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맞붙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 간 대결이 성사된다면 전·현직 총리 간 맞대결은 물론 여야 잠룡 간 맞대결로 말 그대로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전망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종로는 왜 정치 1번지가 되었는지, 또 그동안 종로에서는 누가 당선됐었는지, 되짚어보겠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종로는 정치 1번지로 꼽히는데, 종로가 정치 1번지가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기자]

네, 종로라는 명칭은 1943년 일제가 서울에서 7개 구 제도를 시행하면서 지금의 종로 1가에 큰 종을 매단 종루가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종로의 총면적은 23.9㎢로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인구는 15만여 명입니다.

면적이 넓은 편도 아니고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구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데요.

하지만 정치적으로 갖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보면, 조선 건국 이후 한양 천도와 함께 600년 동안 조선의 중심부 역할을 했고요.

경복궁을 비롯한 왕의 궁궐이 있고 또 광화문 앞에는 조선시대 정치와 행정의 중심 축인 육조거리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부터 종로는 정치 1번지의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광복 이후부터 잘 아시는 것처럼 현재에도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주요 공공기관이 있고 전국 이정표의 기준이 되는 도로원표도 종로에 있을 만큼 말 그대로 정치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이자 수도 서울의 심장부가 종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종로는 정치 거물들의 각축장이 되면서 말 그대로 정치 1번지의 위상을 갖게 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광복 이후 첫 국회의원 선거였던 1948년 제헌국회 당시에도 종로에서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당선됐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첫 총선이었던 1948년 5.10 선거 당시 종로는 갑과을 두 개의 선거구였습니다.

당시 종로 갑 당선자는 이윤영, 종로을 당선자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윤영 씨는 이후 국회 임명동의안 투표에서 인준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제헌국회 초대 총리에 지명될 정도의 거물이었고 장면은 국무총리와 부통령을 거쳐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의원내각제 하에서 장면 내각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5월 치러진 2대 총선에선 종로갑에서 대한부인회 회장 출신 박순천이 당선됐습니다.

박순천은 제헌국회에서는 패했지만 2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후 7대 국회까지 5선을 했고 1963년 민주당, 1964년에는 통합야당인 민주당 총재를 역임하며 여성으로서 헌정 사상 첫 야당 당수를 맡았습니다.

이 여성 거물정치인 에게도 종로의 승리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셈입니다.

1954년 3대 총선에서 승리한 윤보선은 종로에서 내리 3선을 했고, 1960년 8월 4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해방 후 정계의 거목 정일형과 그의 아들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도 종로가 배출한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힙니다.

[앵커]

종로가 정치 1번지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한 건 1996년 15대 총선이라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당시 종로구 총선에 출마한 후보는 신한국당 이명박, 민주당 노무현 후보였습니다.

결론부터 보자면 이명박, 노무현 두 후보 모두 이후에 대통령에 당선이 됐죠.

결국 종로에서만 윤보선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노무현 대통령까지 모두 3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는데요.

전국의 어느 지역구에서도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곳은 없습니다.

그만큼 종로의 상징성은 크다고 할텐데요.

15대 총선 당시에는 샐러리맨 신화를 앞세운 이명박 후보가 3김 청산을 내세운 노무현 후보를 꺾었습니다.

하지만 이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게 되고 2년 뒤 있었던 보궐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이 됐는데요.

대통령 3명이나 배출한 종로구는 이 때부터 정치적으로 큰 꿈을 꾸는 이들이 도전하고 싶은 명실상부한 정치 1번지가 됐습니다.

[앵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로에서 당선되기는 했지만 보궐선거였고, 상당기간 종로에서는 보수성향 후보들이 우세를 보이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그렇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던 1998년 보궐선거를 제외하고는 소선거구가 도입된 1988년 13대 총선부터 2008년 18대 총선까지 내리 보수정당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이종찬 후보가 당선된 이후 한나라당 정인봉, 박진 후보까지 보수정당 후보들이 연이어 당선이 됐습니다.

[앵커]

그런데 2012년 19대 총선에서 정세균 후보가 승리를 거두면서 다시 정치 1번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죠?

[기자]

네, 당시 전북 무주진안장수에서 4선을 했던 정세균 의원은 2012년 총선 당시 아무 연고가 없던 서울 종로에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당시 호남 중진들을 대상으로 민주당에서 험지 출마요구가 강했기 때문인데요.

상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기를 업은 6선의 새누리당 홍사덕 의원이었습니다.

정 의원은 홍사덕 의원을 꺾고 험지인 종로에서 5선 고지에 오릅니다.

4년 뒤에는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상을 뒤엎고 여권의 대권주자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완파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요.

20대 총선 승리 직후 정세균 의원의 당선소감 들어보시겠습니다.

"한때는 제가 상당히 뒤지는 여론조사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종로구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을 믿기 때문에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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